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8 서울 올림픽 (문단 편집) == 경비 활동 == [[서울지방경찰청|서울특별시 경찰국]]은 1988년 5월 17일부터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경비경찰조직 '88경비단'을 '88올림픽경비단'으로 개편했다. 이들은 요인경호대, 참가단 신변보호대, 제1~6지역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경비대원은 근무복, 신변보호대원은 정장형 제복 및 목걸이형 신분증을 착용하였고, 공통적으로 가슴에 훈장형 기장을 달았다. 주 업무는 경기장 주변 경비, 선수단 신변보호, 대테러 작전수행 등으로 서울 및 지방 경기장 35개소, 선수촌 및 보도시설, 지정호텔, 주요 철도역 등 관련 시설 67곳, 연습장 73곳에 대한 시설경비와 각종 문화행사와 국제회의 경비 등을 담당했다. 대회 당시 투입된 경력은 전체 경찰관 중 총 47,194명이었으며, 예산은 국고에서 353억 원, 조직위에서 47억 원을 각각 보조받아 약 4백억 원으로 전담부대 창설 및 운영, 장비보강 등에 투입했다. 치안본부는 치안 대책기구로 치안대책위원회, 실무대책위원회, 간사위원회 등을 운영하며 자문기관으로 자문위원회를 운영했으며, 대회치안대책의 집행 주관은 제2차장 산하에 6개 실무대책부 및 7개 지원단으로 각각 짰다. 특히 서울시경은 종합치안대책위원회, 실무대책위원회, 간사위원회 등을 두고 집행기구로서 특별대책위원회(대책본부)를 두되 핵심시설 전담 경비는 88경비단장이 맡으며, 관할서의 3선 경비는 제2부장, 각 기능별 지원은 각기 다른 부서장이 맡도록 했다. 대회를 전후해 올림픽상황실을 운영하며 모든 진행상황을 올림픽상황실에만 보고토록 했고, 대책본부는 소관기관별 문제발생 시 해결책을 강구토록 했다. 상황실은 상황처리반 및 일보생산반으로 나누어 2교대 격일근무제로 하고 1988년 7~10월까지 운영토록 했다. 올림픽 개·폐회식 동안 철저한 안전을 위해 개최 12시간 전부터 경찰, 소방, 통신, 대테러 등 합동검측반을 동원해 안전검측을 실시했고, 경기장 주변 도로 등지에는 교통정리를 위해 순찰차 52대, 싸이카 74대를 각각 배치해 단계별 교통통제, 입·퇴장 승하차선 지정, 입·퇴장 시차제, 지정주차장제 등을 실시했다. 각종 우발적 사고에 대비해 대테러 특공대, 폭발물처리팀, 한전차, 구급차, 진압부대 등을 근접 배치해 출입문과 관람석에 관중 안전감시요원을 투입했다. 지방 선수분촌 경비는 선수, 임원 등 관계자 신변보호를 위해 시설주와 긴밀히 협조하며 안전활동을 수행하되 군·경 전담지역 책임한계를 구분해 경비를 맡았다. 공항·항만 경비도 군 주관 하에 군경합동으로 진행해 공항 내 청사, 화물청사, 자유지역 등은 경찰이, 기타 2~3선 지역은 군이 각각 맡았다. 그 외에 11개 기능 분야 경력의 집중 운용체계로 확립해내 전문성과 적응력을 고려해 핵심 경비 대상별로 배속·배분시켜 잔여 경력으로 중요도에 따라 증감·지원했다. 각 경비 대상별로 운용되는 경력은 해당 부대 지휘관이 맡았다. 올림픽 기간 중 북한의 방해공작이나 국제테러단체, 국내 반정부·반체제세력 등의 테러행위, 무장공비 침투 등에 대비키 위해 안전본부 산하에 군경합동 대테러 대응팀을 만들었으며, 시·도 대테러 대응팀은 시·도 국장이 맡아 운용했다. * 출처: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pn=0&num=103219|유용원의 군사세계 게시글]],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num=130223|당시 복제]], <국립경찰 오십년사(1995)> p425~43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